자원봉사로 ‘탄소 줄이고(E), 관계 늘리고(S), 연결은 다양하게(G)’
자원봉사활동에 ESG 실천 늘어…서울시자원봉사센터, 전략적으로 ESG 자원봉사활동 운영 나서
상황 변화에 ‘능동성’ 지닌 자원봉사
다가올 미래의 중요 지점 먼저 느끼고
환경·사회 중시한 영역 스스로 개척
‘자연-사람 공동체’ 등 철학도 만들어
‘북한산 토요동행’
나무 1만 그루 심어 탄소 125t 절감
‘구의3동 자원봉사캠프’
버려진 양말목으로 공예품 만들어
‘수어사랑친구들’
‘수어’ 배워 장애인-비장애인 소통 도와
‘위드엘로힘’
‘폐지 줍는 어르신-청년’ 관계망 구축
‘바로봉사단’
전문가들과 연계해 자연재해에 대응
지난 12일 북한산 사기막골 인근 야영장. 시민 자원봉사단체인 ‘북한산 토요동행’ 회원 20여 명이 노란 조끼를 입고 모자를 쓴 채 생태교란식물인 ‘단풍잎돼지풀’ 제거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풀을 뽑고 제거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2015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매주 북한산을 방문해 북한산 환경보호활동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둘레길에 야생화 동산을 만들고 위험한 탐방로나 배수로를 정비하는 봉사활동 횟수를 모두 합치면 470차례가 넘는다.
의사, 교수, 교사, 미용사, 택시기사 등 다양한 시민 50여 명으로 구성된 ‘북한산 토요동행’의 이런 지속적 환경보호활동은 연간 탄소배출량을 125t이나 줄이는 효과를 냈다는 평가를 듣는다. 무엇보다 2015년 북한산 입구인 은평구 진관동 삼천사 앞 소공원 훼손지에 철쭉 3천 주를 심는 등 지금까지 북한산에 1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왔기 때문이다.
‘북한산 토요동행’의 황상선 회장은 이렇게 활동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자연과 사람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생명공동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느 한쪽이 안전하지 못하면 모두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은 생명공동체’라는 황 회장의 말은 최근 기업의 환경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면서 널리 쓰이는 ‘ESG경영’을 떠올리게 한다. ESG경영은 ‘기업이 환경(Environmental), 사회적 책임(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에 관심을 가지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가운데 기업의 환경에 대한 책임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탄소 감축이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국내외 이상고온 현상 등을 겪으면서 기업들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거나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있다. 특히 검색업체 구글은 2017년, 아이폰 제조업체 애플은 이미 2018년 탄소 발생이 없는 재생에너지로 사업을 100% 진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산 토요동행’의 활동과 탄소 감축 사례는 이제 기업뿐만 아니라 자원봉사단체들도 환경보호를 중요시하며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환경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과 지배구조 또한 자원봉사활동의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 사실 자원봉사 하면 시민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밥이나 반찬을 배달하는’ 복지활동이다. 하지만 이미 복지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 활동이 되어 있다. 김형일 광진구 구의3동장은 “예전에 1~2명이 맡았던 동 주민센터의 복지활동이 이제는 2개 팀이 맡아 할 정도로 커졌다”며 “복지가 지자체의 가장 중요한 업무가 됐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자원봉사활동이 기존 복지활동을 넘어서 새로운 활동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원봉사활동이 능동성을 가지고 다가올 미래의 중요한 지점을 먼저 알아차리고 실천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행정력이 복지에 신경 쓸 수 없었던 과거에는 자원봉사활동이 부족한 복지 부분을 능동적으로 채워나갔고 이제 행정 부문이 복지를 중요한 업무로 생각하자 다시 새롭게 우리 사회가 필요한 부분을 찾아나선 것이다.
그 새로운 방향성이 바로 환경과 사회, 그리고 지배구조다. ‘ESG 자원봉사활동’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자원봉사단체가 기업이 아닌 만큼 ‘ESG 경영’과 ‘ESG 자원봉사활동’은 구체적인 실행방법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지구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근본 지향점은 똑같다. 이는 최근에 서울시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원봉사활동을 살펴보면 좀더 명확해진다.
지난 7일 광진구 구의3동 주민센터 4층 강당은 학생들로 붐볐다. 구의3동 자원봉사캠프(캠프장 김재열)가 초등학생과 중학생 30여 명을 대상으로 버려지는 양말목을 이용해 텀블러 가방을 만드는 방학프로그램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참가한 학생들은 김재열 캠프장과 이명순 총무를 비롯한 캠프 자원봉사활동가들의 지도 아래 양말목을 이용해 텀블러 가방을 만들어나갔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는 살아 있는 환경교육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구남초등학교 5학년 김주아양은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환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구의3동 자원봉사캠프는 양말목 업사이클링 활동 등으로 지난 6월9일 ‘2023 서울특별시 환경상 기후행동분야 우수상’을 받았다. 캠프가 생활 속에서 다양한 탄소중립 실천 활동을 펼침으로써 미래세대를 위한 환경보전에 기여했다고 인정받은 것이다. 구의3동 자원봉사캠프는 양말목 업사이클링 활동뿐만 아니라 폐현수막을 활용해 카네이션 꽃을 만드는 등 환경을 생각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김재열 캠프장은 “제가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한 2014년만 해도 환경 관련 봉사활동이 아닌 반찬 배달 등 전통적 봉사활동이 많았다”며 “그러나 2017년 캠프장이 되면서 환경 관련 봉사활동을 개발하고 늘려왔다”고 말한다. 이런 변화는 김 캠프장과 8명의 자원봉사활동가가 사회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다. 김 캠프장은 “환경 관련 봉사활동을 꾸준히 벌이자 지난 5월에는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 한국지사에서 연락을 해와 함께 한강에 나가서 플로깅(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의 새로운 방향으로 사회적 소통 증대를 목표로 설정한 자원봉사활동단체도 적지 않다.
강서구에서 활동하는 ‘수어사랑친구들’(회장 이정희)은 ‘수어’를 배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을 돕고, 청각 장애 인식개선을 위해 지역 초·중·고에서 교육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다. 또한 수어가 필요한 다양한 현장에서 수어 통역 보조 역할도 하고 있다.
단체를 이끄는 이정희 회장은 “뉴스에서 수어 통역 모습을 봤는데, 농인분들과 취미활동·문화생활 등을 함께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활동하게 됐다”며 “수어를 잘 모르는 시민들도 농인과의 소통을 위해 잠깐의 수고와 시간 투자를 한다면 농인들과의 연결을 통해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자원봉사활동단체가 ‘끊어져 있는 사회의 한 부분’을 발견하고 그것을 연결하려고 노력하는 점에서 ESG 경영의 사회적 책임 부분과 닮았다.
폐지 줍는 독거 어르신을 찾아가 손수 만든 반찬과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는 위드엘로힘(대표 김요엘)도 ‘청년과 어르신 사이의 관계망 구축’이라는 사회적 목표를 실천하고 있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의 ‘2023년 자원봉사협업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된 위드엘로힘은 서울지역 고물상에 연락해 폐지 줍는 독거 어르신을 발굴한 뒤 매월 마지막 주에 고물상을 방문해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전달한다. 위드엘로힘은 지난 7월 말에도 성수, 신당, 장한평, 청량리 등 4개 지역의 고물상을 방문해 물품을 전달했다.
위드엘로힘이 복지 차원의 봉사활동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을 목표로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라는 것은 이들이 물품 전달을 최종 목표로 삼지 않고, 이를 매개로 해서 더 깊은 관계맺음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확해진다. 이를 위해 위드엘로힘은 전달하는 물품 바구니에 꼭 손으로 쓴 메모를 함께 넣는다. 위드엘로힘 김요엘 대표는 “저희는 단지 어르신에게 무언가를 드리고 싶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며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고 말했다. 홀몸노인이 점차 늘어나는 상황에서 봉사를 통해 사회적 연결 지점을 찾고 싶다는 것이다.
ESG 경영에서의 지배구조(Governance) 또한 최근 자원봉사활동에서 중요시하는 부분이다. 이는 ESG 자원봉사활동에서는 ‘연결을 다양하게 하는 것’으로 구현되고 있다. 자연재해에 대한 대응을 목표로 구성된 바로봉사단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가 2022년 결성한 바로봉사단은 자치구자원봉사센터와 함께 전문기관 및 협회, 직능단체가 꾸린 봉사단이다. 이 가운데 전문기관들을 살펴보면 △현장복구 인력지원 22개 △긴급구호 4개 △생활지원 2개 △교통질서 2개 △심리상담 3개 △전기·보일러 등 전문기술 8개 △보건의료 6개 △기업/기관 2개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단체가 참여한 것은 최근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가 그 규모가 크고 피해복구에 다양한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는 “바로봉사단은 재난에 대응하는 주체들의 유기적 협력 체계를 통해 재난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기구”라며 “평상시에는 네트워크 모임에서 서로의 전문성을 교환하며 내 역할을 찾아간다”고 밝혔다. “시민과 함께하는 재난예방활동을 통해 재난 상황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시민문화 확산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한다.
바로봉사단은 이에 따라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곧바로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해 평시에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난 17일 오후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서울지역 재난대응 자원봉사 체험훈련’도 그중 하나다. 이 훈련에는 전체 900여 명의 바로봉사단 단원 중 300여 명이 참여했다. 참석한 봉사단원들은 이날 △올바른 재난현장 초기 정보수집 △이재민 구호와 지원 △재난현장 자원봉사 운영 △재난현장 장애인 이동 지원 △심리적 응급처치 등에 대해 강의를 듣고 실습했다.
이날 훈련에 참여한 봉사단원 김태현(58)씨는 “바로봉사단에는 다양한 전문가들이 함께하지만 위급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몸으로 대처방법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에 따라 이러한 교육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고 말했다. 평시에 받는 훈련을 통해 전문성과 네트워크 효과를 더욱 높이겠다는 다짐이다.
우리 사회가 경험하는 환경 위기와 사회적 단절 그리고 자연재해는 우리를 위협하는 주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하지만 자원봉사활동도 그에 맞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그 진화의 모습은 ‘탄소는 줄이고(E) 관계는 늘리고(S) 연결은 다양하게(G)’ 하는 ‘ESG 자원봉사활동’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한겨레·서울시자원봉사센터 공동 기획
(출처 : 한겨레 서울& https://www.seouland.com/arti/society/society_general/133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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