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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C 스토리/활동 이모저모

[봉사컬럼] 자원봉사와 나눔의 문화


자원봉사와 나눔의 문화
김경동
(서울시자원봉사센터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학술원 회원)
보통 나눔에 관한 담론에서는 나눔이 “좋다,” “바람직하다,” “해야 한다”는 선언과 주장은 자주 보이지만 왜 나눔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지에 대한 해명은 드물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목표는 개인적인 삶의 가치 실현은 물론, 그것을 넘어 집합적인 유익을 추구하는 것도 포함하므로 사회구성원 모두가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서로 돕는 일이 중요하다. 가치 있는 삶이란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개인, 행복한 공동체를 성취하려는 것이다.

개인은 타고난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하여 자아완성에 이르기를 희구하고, 사회는 구성원의 집합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최고수준의 문화적 개화를 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건강 및 정신적․심리적 안녕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원이 필요하고, 그 자원을 나누어 누리는 배분과정이 공정한 정의(justice)와 공평한 균등(equity)의 원칙에 기초할 수 있도록 누구나 의사결정에 자유로이 참여하고 선택하는 자유를 보장하는 구조적 유연성을 요구한다. 이와 동시에 투명성, 신뢰, 안전과 안정, 응집력, 관용과 포용, 및 자율성을 인정하는 권한부여 등 사회의 질적 품격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가치다.



l 바람직한 사회
이와 같은 바람직한 사회를 이룩하는 데 필요한 자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물질적, 경제적, 기술적인 자원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가시적인(tangible) 것이 있고, 힘, 권력, 권위를 비롯하여 규범, 질서, 신뢰, 연고 등의 사회적 자본, 위광(prestige), 영예, 존경, 애정과 같은 사회심리적․상징적 자본, 교육, 지식, 정보를 포함하는 문화적 자본, 그리고 자신의 시간, 재능, 전문적 소양, 기술적 재능과 같은 개인적인 자원은 모두가 비가시적인(intangible) 것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가치추구가 요청하는 자원의 배분에서 불가피하게 경험하는 불평등이 인간사회에는 상존한다는 점이다. 나눔 운동의 취지도 실은 이처럼 불평등한 사회계층구조의 비인간적, 반사회적인 요소를 극복하고 되도록이면 균등한 자원배분이 이루어져서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나서야겠다는 의지의 표명에 다름 아니다.

사람들은 배분정의(distributive justice)의 정서를 품고 있으므로 자기보다 더 많이 누리는 사람들과 비교해서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면 박탈감과 불만을 갖기 마련이다. 만일 다수의 구성원이 이런 이유로 울분을 품게 되면 기성 체제와 제도에 저항하며 변혁을 꾀하려는 움직임이 발생할 수 있고, 이로 말미암아 사회는 불안정과 갈등으로 사회통합에 금이 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눔에 대하여 진정성을 가지고 임해야 하는 것이다.



l 공동체
그 뿐 아니다. 주변에 우리보다 불우한 이웃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 편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오히려 반발만 사고 결국은 그 사회적 여파가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 효과에도 유의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요 사회적인 현실이다. 또한 나눔은 단순히 그와 같은 자원배분의 불평등구조에 대한 불만 표출을 예방 또는 저지하기 위한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나눔은 불평등한 계층구조 속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친 구성원들에게 베풀고 나누려는 이타적 충동의 소산이기도 하다. 인간이 지니는 일종의 측은지심(惻隱之心) 같은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나눔의 이유는 인간이 누리고자 하는 공동체의 성격에서 찾을 수 있다. 공동체란 일종의 유기적인 생태체계(organic ecosystem)의 특징을 띠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태계의 모든 생물체는 상호관련성 속에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으며 생존․번영한다. 한 쪽에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다른 쪽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고,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체계의 구성부분에서 변고나 변화가 발생하면 체계 전체에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인간의 사회적 공동체도 결국은 이와 같은 생태적 공동체의 하나이므로 개인이나 집단이 고립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하며 서로서로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상호영향을 미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원초적 공동체적 삶의 실존적 조건 때문에라도 인간이 누리는 자원은 서로 나누어 공유하는 것이 생태체계의 본질에 걸맞은 특성인 것이다.



 l 자발성, 무보수성, 공익성
그러면 ‘나눔’ 혹은 ‘나누기’는 무엇을 뜻하는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분배(distribute)한다는 의미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가 아닌 사회 전체의 자원을 모든 구성원들에게 나눈다는 뜻이다. 이때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은 분배가 일어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재분배의 형식으로라도 공정한 배분정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졌거나 무소유인 자에게 자기 자원을 적당히 나누어 주는 조처를 요구하는 원리다.

 

둘째는 공유(share)를 뜻한다. 어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자원을 갖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누리고자 나누어 갖고 활용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소유여부로 나눔의 주체 및 객체가 갈리고, 있는 쪽이 없는 쪽에게 자기의 것을 떼어서 나누어 준다는 행위가 따른다. 이런 공유는 흔히 ‘기빙’(giving)이라고하는데, 영어권에서는 기부를 포함하여 자원봉사 활동도 기빙이라 일컫는다. 그러므로 나눔을 광의로 해석하면 모든 형태의 자발적 봉사활동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할 것이다.

자원봉사는 주로 시간, 노력, 재능, 전문성과 같은 자원을 공동체 구성원들과 공유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여기서 중요한 요건은 자발성, 무보수성, 공익성의 원칙이다. 그러한 나눔 행위는, ① 순전히 직접적인 경제적 혜택 (돈․보수 기타 물질적 보상 등), 자아보존이나 생리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고, ②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강박, 신체적인 힘에 의한 강제, 법적인 제재 같은 것 때문이 아니며, ③ 오히려 정신적인 혜택에 대한 기대, 가치, 이상, 공공선, 공익, 공통의 이해관심, 집단적 취향 등에 대해 헌신하겠다는 결단(commitment)에서 우러나오는 행위다.



l
자발적 복지공동체’(voluntary welfare community)
결국 우리가 나눔의 문화를 진작코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자발적 복지공동체’(voluntary welfare community)를 이룩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는 힘과 돈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통합을 이룩하려는 조직 원리로 구성하므로 비폭력적이고 비강제적이며 비물질적인 사회로서 자발성(voluntarism)이 중요한 가치가 되고 모든 개인과 조직단위들이 자유재량에 의해 자율적으로 사회에 공헌한다는 봉사의 이상을 깨우치고 장려하는 사회다. 

 

이와 같은 나눔 운동을 확산하고 진흥코자 할 때 가장 긴요한 요소 한 가지는 그 사회의 문화 속에 나눔의 의식과 행위관습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행동속성으로 이미 배태(embedded)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가령 또끄빌(Alexis de Tocqueville)이 19세기 미국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문제해결과 공동체 형성에 봉사하고 기여하는 행위를 일컬어 ‘가슴에서 우러나는 습관’(habits of the heart)과 같은 것이라는 말로 집약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나눔 문화의 뿌리는 서방세계에서는 주로 기독교 문명이라면, 동방문명,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적 전통에는 불교의 자비도 있지만, 유교에서는 나누어 빈궁을 구제하는 일을 분산이라 일컫고 이는 인(仁)의 실천으로 보았다(分散者仁之施也, 『禮記』).

또한 구체적인 사회생활에서는 육행(六行)의 마지막 덕목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구휼(恤)이다. 또한 한국고유의 공동체적 나눔 문화의 대표적인 예로 ‘두레’와 ‘품앗이’ 및 ‘계’(契), 그리고 실로 다양한 분야의 나눔 문화 실천을 적시하고 있는 ‘향약’이 있었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여민동락(與民同樂)의 노블레스 오브리주(noblesses oblige) 정신이다.


 

l 다만 나눔의 문화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느 시대 어떤 사회든 이를 위한 사회화 즉 교육이 필수다. 특히 부모를 위시한 가족 구성원들의 자연스러운 일상 행위에서 일어나는 체험적 학습의 영향이 가장 강력하다. 학교나 기타 공적 교육기관의 사회화는 이를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현대는 다중매체의 위력이 또한 막강한 시대이므로 그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러한 학습과정에서 특별히 강조할 것은 사람들의 ‘마음의 프레임’(the frame of mind)을 바꾸는 일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세상을 보는 ‘마음의 눈’ 혹은 ‘마음의 창틀’을 나눔과 자원봉사 지향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프레임에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이유는 “프레임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는 작용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프레임이 실효를 거두려면 반복적인 습관 기르기의 노력을 요구한다.

아울러, 나눔의 행위를 논할 때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자원은 나누면 분산으로 인한 축소 내지 감소가 결과하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나누는 방식에 따라서는 나누면 더 늘어나는 수도 있다. 더구나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자원은 나누면 나눌수록 더 증가하고 확장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나눔으로 자원이 늘어나는 상생의 원리가 작동하는 행위로 우리들 마음의 틀을 리프레임(reframing)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처럼 생각을 조금만 고쳐먹으면 그만큼 모두에게 득이 되고 서로를 북돋우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자원봉사에 의한 나눔 문화 확산의 중요한 과제다. 자원봉사계에서 활동하는 관리자들은 이와 같은 나눔의 철학과 가치에 대한 이해를 함양하고 나아가 이를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널리 인식시키고자 매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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