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룬투어,
진정한 자원봉사를 체험하다
출발하기 30분 전, 이미 어둑해진 시청 앞에 서 있자니
왠지 모르게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스태프 명찰을 목에 걸고 봉사자들을 기다리고 있자니,
나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왜 이 외국인들은 타지의 한국 땅에서 봉사활동을 하려는 것일까?'
하지만 하나 둘씩 버스 안으로 탑승하는 그들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뾰족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반갑게 인사하였고,
익숙한 듯 자기 자리를 찾아서 앉는 모습이 스태프인 나보다
자연스러워 조금은 움츠러들었습니다.
짧은 인터뷰를 나누었던 그들은
대부분 나보다 더 많은 봉사활동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세 시간 남짓을 달려 도착한
신암리 마을은 말 그대로 시골이었습니다.
남자들은 15명이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고,
그것도 샤워시설이 없이
세면대와 변기 하나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성분들과 시간대로 나누어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이런 환경을 봉사자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정말로 걱정이 되었지만,
모두들 불평하지 않고
진행요원들의 인솔에 따라주었습니다.
우리들을 너무나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이장님과
마을 주민들의 정성 때문도 있었겠지만,
정말로 이 외국인 봉사자들은 놀러온 것이 아니라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장님이 준비해주신
무농약 고구마와 동치미, 과일로 출출한 배를 요기하니,
볼룬투어 첫날밤을 '불금'으로 활활태울
레크레이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전 세계를 '강남 스타일' 열풍으로 만들어 준
말춤으로 화려한 오프닝을 열었고,
팀별로 모션퀴즈, 댄스 등
모두가 하나가 되어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뜨거운 첫날을 보내고 이튿날,
해가 중천에 뜨기 전에 끝내야 하는 것이 농사인지라
아침 6시부터 기상 후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준비해주신
유기농 반찬들로 넉넉하게 배를 채운 후 밭으로 나갔습니다.
아침식사 준비부터 시작해
테이블 세팅, 식기류 준비, 반찬 정리, 설겆이 등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봉사자들은 열의가 넘쳤습니다.
밤새 비가 내려 고구마 밭은
매우 질척해져 있어서,
발을 빼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평소 속도로 고구마를 캐는 작업이 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정말 최선을 다해 고구마를 수확했습니다.
누구 하나 쉬는 법이 없이 진지했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니까 정말 즐겁다’라며
한 봉사자는 두 손에 든 고구마를 보여주면서 웃었습니다.
우리가 짐을 풀은 마을회관에는 샤워장이 없는지라,
진흙을 털기 위해 인근 계곡으로 가서 강물에 몸째 담궜습니다.
자원봉사자들도 뛰어들어
스태프들과 하나가 되어 어울렸습니다.
수영장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편견이었습니다.
한숨을 돌리고 나서,
계곡 주변에 돋아난 가시나무와 잡초들을 제거해
주민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계곡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썼습니다.
아침 농사일로 몸은 지쳤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한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마을 회관에 도착해 주먹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봉사자들과 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올해까지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한 봉사자는
‘정을 나누는 한국의 문화가 좋고 한국적인 정서가 자신을 자유롭게 한다’ 면서,
이 마을에 또 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지역 자원봉사 담당자분과
번호를 교환하는 풍경도 벌어졌습니다.
이 자원봉사의 목표인 ‘도농교류’가 첫 결실을 맺은 셈입니다.
마을주민 분들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작별인사를 뒤로 한 채,
버스를 타고 부여의 선사유적지를 탐방했습니다.
30년이 넘도록 그 유적지를 지켜오신 문화해설사와 함께
고대의 부여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날씨가 무더워 스태프를 비롯한 모두가 지쳐있었지만,
교과서에서만 나오는 비파형 동검이나
움막들이 있었던 장소를 실제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볼룬투어가 절정으로 무르익었던 것은 아마도
사물놀이 체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덕수 사물놀이 연수원을 방문해
간단하게 사물놀이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사물놀이가 그토록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가슴 뛰게 하는 악기인 줄은 한국인인
나도 잊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장구로 총 4마디의 장단을 배우고,
하나 둘 징과 깽과리, 북을 추가하니
그럴싸한 ‘별달거리’ 연주가 완성되었습니다.
처음 악기를 잡아보는 봉사자들의 손놀림은 어색했지만,
연습의 마지막에는 모두들 진지한 표정으로 장구를 두드렸습니다.
사물놀이 연습을 마치고 둘러앉아서
이번 볼룬투어의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봉사자들은 모두 잊지 못할 추억을 가졌다며
서포터즈에 감사의 표현을 전했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글로벌 서포터즈가
제 역할을 해내었다는 사실에 뿌듯했습니다.
부여의 소문난 맛집이라는 쌈밥집에서 맛있는 한식을 먹고,
버스는 다시 서울로 향했습니다.
하루 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체험하였기에
버스에 타자마자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라’는 유명 인사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만족스러운 미소로 버스를 내리는 봉사자들을 보며,
앞으로도 글로벌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더 많은 외국 자원봉사자들에게
이런 소중한 시간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와 같이 깜깜한 시청 앞이었지만,
어제는 보이지 않았던 따뜻한 불빛들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는 길은 가벼웠습니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 글로벌 서포터즈 임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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