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PYC 워크숍 철 날


*아래의 내용은 PYC 워크숍에서 다룬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Q. 바람은 왜 부나요?


푸딘댕청소년센터를 방문하고 흙집짓기와 농삿일 거들기의 일정들을 모두 마친 일요일 아침, 우리의 워크숍은 ‘바람은 왜 부나요?’라는 이선재선생님의 질문과 함께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흔들리라고.’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날 알아달라고.’ 


 우리의 머리카락을 흩어놓는 바람이 휘돌아나가는 용구농장의 널찍한 식당 겸 강당에서 우리는 지난 라오에서의 시간을 돌아보기로 했다. 서울에서는 그리 웃을 일이 많지 않았는데 라오에 오고난 뒤 웃음이 많아졌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웃음으로 이어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와 살고 있는 땅에 발을 딛고 스스로 서는 이들, 그 자립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고 했다. 또 우리가 무의식중에 의존하게 되는 선진국과 후진국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과 그 경계들이 흔들린다는 이야기, 삶의 여러 압박 속에서 잊고 살았던 일상과 사람들에 대해 깨달았으며 그렇게 우리가 왜 라오에 왔는지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둘째 날, 폰씨누안과 클릭의 라(La)와 비(Bee)가 우리에게 물었던 질문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Why did you guys come to Laos? 





Q. 한국은 왜 가난한 나라를 돕는가?


한국과 라오, 어느 나라가 기부지수가 더 높을까? 우리는 ‘기부’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먼저 생각하였다. 기부라는 건 그 행위가 주는 자기자신의 만족감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이야기, 기실 내가 무엇인가 가졌다는 것이 그것이 내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나누려고 한다는 것, 무의식중에 했던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미쳤을 영향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는 이야기들. 이선재선생님은 기부지수를 조사한 한 국제기관의 자료를 인용해 기부지수 순위에 있어 라오는 10위권, 한국은 50위밖이라고 했다. 돈은 한국이 아주 많이 내겠지만 서로 돕는 나눔이 일상이 되어있는 라오의 삶은 한국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차원과는 아주 다른 차원의 나눔이었다.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는 그 질문이 멋쩍은 건 사실 돈으로 살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



 


Q. 구걸하는 걸인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가?


국제개발협력에서 한국이 범하고 있고 많은 소위 강대국들이 범하고 있는 치명적인 실수는 국제개발협력이 ‘시혜’를 베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구걸하고 있는 걸인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가, 주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자립을 고민하면 돈을 드리지 않는 것이 맞지만 그들의 생존권의 문제를 생각했을 때는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된다는 생각, 걸인들이 다른 일을 하기 싫어서 구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구걸이 그 어떤 직업이나 사업보다 더 나은 벌이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기서 이선재선생님은 인지상정(人之常情)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마음을 따라가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결국 이것이 자원봉사나 기부의 기본이 아닐까. 





Q. 사람도 관리될 수 있나요?


자원봉사 관리자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언어에 대해 성찰했다. 언어가 규정하는 많은 것들. 관리자라는 말은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을 전제하는 것이고 그 말 뒤에는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한 관리라는 말은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 사람은 관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관리자들은 보통 자신들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제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성찰이 이어졌고 ‘제시’라는 말 역시 내가 가진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한계를 극복해내지 못하므로 ‘제안’하는 역할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냐는 성찰이 있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들은 본질을 흐리고 사람을 관리의 대상으로 착각하게 한다. 자원봉사는 수직적인 관계를 수평적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되어야 하며 업무를 위한 구조는 권력관계 아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관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Q. 전문가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당신은 전문가가 맞나요? 이 질문에 대다수가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전문가는 대체 누구지? 전문성이란 그럼 무엇일까? 가만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대다수가 젊은 여성 실무자들인 까닭에 전문성에 대한 사회의 요구로부터 받아온 스트레스와 불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직원이 바뀌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관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기관의 전문성은 어떻게 쌓일 수 있는가? 왜 사람을 키우지 않는가? 정말 전문가는 어려운 말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지식을 듣는 사람의 필요에 맞추어 전달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아닐까? 그럼 대체 왜 사회는 전문가를 필요로 하는가? 기관의 차원에서는 많은 경우 전문가의 자문을 받았다는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이 사회는 무엇으로든 전문성을 ‘증명’해내기를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성은 증명 가능한 것이 맞을까? 자문위원회가 대부분 교수들로 구성되는 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학위가 그들의 전문성을 증명한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성이라는 건 사실 비전을 볼 수 있는 눈이 아닐까? 모든 사람은 고유한 경험을 통해 성장하므로 그렇게 쌓인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삶의 총체가 전문성이고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대체될 수 없는 전문가 아닐까? 이선재선생님은 자신이 화두로 두고 고민해온 이 전문가라는 말을 이렇게 정의했다. 전문가는 자기가 무엇을 보고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다. 





Q. 자원봉사는 자원활동이 아니다?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 비어있는 틈을 메우는 것, 큰 돈 들이지 않으면서 아주 큰 걸 배울 수 있는 것, 작은 일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사람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자원봉사 아닐까? 그렇다면 자원봉사와 자원활동의 차이는 무엇일까? 라오의 맥락에서 바라본 자원활동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아끼는 마음과 나보다 ‘우리’를 지켜내려는 힘, 나를 위한 행동이지만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역사회를 함께 지탱해내고 행복해지게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을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것,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것, 어떤 끌림이 있을 때 그것에 진심으로 반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원활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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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가닉팜의 귀엽둥이 음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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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_PYC 워크숍 마지막날

 


posted by 자원이자봉이 서울시자원봉사센터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