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세상 칼럼]독립투사와 자원봉사자, 나는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글 ㅣ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광복70주년인 올해 이 영화마저 없었더라면 얼마나 허망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 <암살>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그렇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영화에 등장하는 독립투사들처럼 행동할 수는 없는 노릇. 그래도 한번쯤 ‘그때 거기’ 그분들의 정신을 ‘지금 여기’ 우리들은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고민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 신민(臣民)에서 시민(市民)으로



1919 3.1혁명 전까지 이 땅의 사람들은 백성(百姓), 신민(臣民), 서민(庶民) 등으로 불리며 왕에 종속된 존재일 뿐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인민(人民)과 국민(國民)도 등장하지만 근대적 의미의 인민과 국민은 아니었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짐이 곧 국가”인 시절이었다

그러나 3.1혁명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생각은 확연히 달라졌다. 3.1혁명의 열기를 이어받아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은‘대한제국大韓帝國의 정치는 과거 500년간 전래 되었고, 앞으로 만세토록 불변할 전제 정치(專制政治)이다.’라는 대한국(大韓國) 국제(國制)[오늘날 헌법 - 필자 주]조항 대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조항(대한민국 임시헌장 1919.4.11)을 탄생시켰고‘대한국 대황제(大皇帝)는 무한한 군권(君權)을 지니고 있다’라는 조항 역시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있다.는 조항(대한민국 임시헌법 1919.9.11.)으로 대신했다.

더 이상‘상제上帝(하느님 - 필자 주)는 우리 황제皇帝를 도우사...’로 시작하는 <대한제국 애국가>는 부르지 않았으며 오히려“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면서 대한제국을 버리고 대한민국을 선포한다. 드디어 이 땅에 민주주의와 공화제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고 스스로 신민에서 시민으로 거듭나려는 자기 선언이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자아의 발견은 저절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오늘날 상식이 된 민주, 공화, 자유, 평등사상은 우리나라의 경우 1800년대 중반 무려부터 선각자들에 의해 처음 개념이 들어온 이후 동학농민혁명 - 의병 - 항일독립투쟁 - 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 온 결과물이다. 머릿속에 있는 무형의 개념을 유형의 제도로 만들기까지의 고뇌와 희생을 어떻게 계량할 수 있을까.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원래 민주(民主)는‘민의 주인’즉 왕을 뜻했으며, 시민(市民)은 저잣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 즉 상인을 지칭했다. 하지만 이제는 민주는‘민이 주인’으로 시민은 ‘정치적 권리를 갖는 주체’로 뜻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렇듯 수많은 선각자들의 희생으로 이룩한 한국의 민주시민사회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또 우리는 어떤 시민이 되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완전한 해답을 낼 수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에 어느 정도 영감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good person)은 사회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지만, 좋은 시민(good citizen)은 좋은 정치 체제를 전제로 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언명의 의한다면 가령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성실하고 친절한 게다가 불우이웃돕기도 열심인 사람은 식민지시대건 독재시대건 좋은 사람(good person)일 수는 있지만 결코 좋은 시민(good citizen)일 수는 없다. 그러면 좋은 시민은 어떤 모습일까. 2002년 극우파 국민전선의 당수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 나오게 되자, “공화국을 지키자!”는 펼침막을 내걸고 거리에 나온 10여 만 명의 프랑스 고등학생들 그리고 2004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노래하며 거리에 나온 수많은 우리 국민들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좋은 시민이 아닐까. 요즘엔 ‘좋은(good) 시민에서 적극적인(active) 시민으로까지 개념이 더 발전되고 있다.

 


자원봉사자와 독립운동가의 만남


우리 역사 속에서 좋은 사람(good person)에서 출발하여 좋은 시민(good citizen) 나아가 적극적인(active) 시민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나는 단연코 독립운동가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성에 의해 인도된다”(체 게바라)는 말처럼 모든 독립투사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이고 그러하기에 비인간적인 제도와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귀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식민지시대가 아니니 독립운동가는 존재할 수 없지만 만약 독립운동가들이 오늘날 다시 태어난다면 과연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이런 궁금증은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어느 정도 풀리기 시작했다. 영화 <암살>에 짧게 등장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약산 김원봉. 그가 창설한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후에 조선의용군)의 창립 사진. 사진 속 조선의용대를 한글 풀어쓰기로 표기한 것과 더불어 단체의 영문명 KOREAN VOLUNTEERS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평소 VOLUNTEER를 자원봉사자로만 인식하던 좁은 시야가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실제로 고용된 병사를 뜻하는 용병傭兵과 달리 독립운동의 뿌리격인 의병義兵은 영어로 volunteer뿐 아니라 patriotic soldier,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로도 표현된다. 그렇다면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히 시혜나 동정을 넘어 공공선과 정의를 수반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서 이러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만약 독립운동가들이 오늘날 다시 태어난다면 아마도 그들은 자기 직업에 충실하면서도 시간을 만들어 남을 돕는 과정 속에서 공공선 뿐 만 아니라 자아실현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자원봉사자의 모습이 아닐까.

 

예를 들어 관립우체학교를 다녔던 여운형은 우체부로, 중국에서 비행사였던 권기옥 여사는 공군장교로, 영덕철물점을 운영하던 김상옥은 철공소 사장으로, 신학교 졸업한 장준하는 목사로, 농민독본을 저술한 윤봉길은 농민회장으로, 철도운전 견습생을 지낸 이봉창은 철도기관사 등으로 일하며 자원봉사에 나서지 않았을까하고 상상해 본다.

 

여하튼 세상이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고 우리 주변의 그 누군가에 의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물론 그 누군가에 나도 포함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 본다.

 

posted by 자원이자봉이 서울시자원봉사센터블로그